읽고 보고 쓰다

창세기를 읽다.

Gyul_00 2017. 5. 5. 02:26

창세기를 읽다 

 

 

'형제가 성경을 읽을 수록 형제는 하느님이 아니라 형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워딩은 정확하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 꼽는 이승우 작가의 소설 <지상의 노래>에서 인상깊게 남은 한 문장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부터, 이 문장은 '경험'에서 온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경험에서 온 문장.  

창세기를 읽었다.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창조신화가 창세기를 가득 채울 것이라 생각 했다면 오산이다. 심지어 땅과 하늘 사람의 창조도 두가지 버전이 있다. 갈빗대에서 하와를 빗어, 아담이 하와에게 내 몸중에 몸이요, 내 뼈중에 뼈라 라고 말했던 거 말고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라고 하는 건조한 버전도 연달아 있다. 

 

창세기는 인간과 세계의 창조서사에서 멈추지 않고 이것이 인간의 세대와 인간의 역사의 시작을 담아내고 있다. 신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인간은 세대를 이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며 한 약속을 확인하고 계승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창세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두가지 였는데, 첫번째는 창세기가 끝나는 점이다. 정말 소설이나 드라마로 치자면 결정적이 이야기가 풀어지다가 끝나고 마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을 쭉 설명하고, 이집트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셉의 죽음으로 창세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듯이 격정의 서사인 '탈출'로 이어질 것이다. 탈출기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이를 감당해야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신의 약속이 창세기에서 인간의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다.  

 

이제 탈출기를 다시 읽게 되면 창세기에서의 신의 반복된 약속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를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창세기는 탈출기를 위한 서사일 거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는데- 이건 다음화를 봐야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두번째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사우와 야곱의 장자의 축복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삭의 둘째 아들인 야곱이 아버지가 죽기전에 형에게 주는 장자의 축복을 꾀를 부려 가로채버린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얻고 이집트로 팔려가는 것, 그리고 창세기 초반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죽이는 것과 사실상 모티브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초의 인간이 앎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악과를 먹고, 신의 세계에서 쫒겨난 인간이 낳은 형제가 질투로 인한 살인에 휘말린다. 그리고 세대가 반복되어도 가인과 아벨의 사건은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게, 아닐까 에사우와 야곱 그리고 요셉과 형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당시의 이집트에서 탈출을 꿈꾸고 탈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조들에게 신이 준 약속이 무엇이었는지를 하나하나 기억하면서도 왜 질투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 안에 반복해서 담아 냈을까 했던 것이다. 

 

이것도 탈출기를 다시 읽으면서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