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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숙이며 걷다 ​ 갑자기 배 밭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가든형 불고기 집과, 닭 백숙집을 지나 서울 변두리, 한적한데 정리 안된 동네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밭이 나왔다. 지난 주말 내내, 서울 외각에 있는 수도원에 있었다. 별 일도 없는데 괜히 속이 시끄러워서 어디라도 가야겠다 싶어, 찾았다. 수확을 앞둔 수확을 앞둔 배들은 회색 갱지같은 것들에 씌워져 있었다. 곳곳에 떨어진 배들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볕도 좋고 바람도 좋았다. 자매님 지름길은 배 밭인데, 고개를 숙이며 걸어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배가 떨어집니다. 숙소와 성당 사이에느 꽤 넓은 배 밭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수도원을 안내해준 수사님의 설명을 따라 주말 내내 머리를 숙이고 배 밭을 오고 갔다.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살고 ..
불평등의 미세먼지 -지난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입사 3개월 차의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숨졌다. 김용균, 24살의 젊은 노동자는 고속으로 석탄을 싣고 움직이는 설비에 머리와 몸을 밀어 넣고 기계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업무 그 자체가 곧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이었다. 사람이 죽은 그날 이른 아침에도, 컨베이어벨트는 다시 돌아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일터가 그런 곳인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도 알지 못했다. 김용균을 죽인 그 발전소에서, 지난 2008년부터 10년 간의 산재 사고는 58건, 이중 사망 사고는 12건에 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일했던 컨베이어벨트를 보고, 이제야 알았다. 스위치만 누르면 환해지는 방이, 종일 콘센트를 꼽아두던 텔레비전의 드..
지난해와 결별하다. - 매일 아침 집 근처 숲으로 산책을 느릿느릿 다녀오고, 점심에는 내가 좋아라 하는 사람들만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지난해의 마지막 금요일을 시작으로, 열흘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을 신년휴가로 얻은 덕이다. 좋아라 하는 이들과의 만남은 늘 예상보다 길어졌다. 서로의 안부를 길게 물으며, 그럴싸한 신년 계획 없이 계획이 세워진다. 내가 이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감사인사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어야겠다고 되뇌었다. 신년휴가가 끝나가는 동시에 새해의 첫 번째 주말, 어김없이 숲을 걸으며 나의 새해가 지난해와 결별하고 오는 ‘새로운’시간임을 깨우친다. 이토록 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 낯설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를 둘러싼 조건은 바뀐 것이 없다. 도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