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람바 시르사아사나
Shirshasana
이미지: www.ashtangayoga.info
-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때, 바닥을 단단히 짚어낸 손부터 물구나무를 서며 두 발을 하늘 위로 쭉 뻗은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보며 와, 어떻게 저렇게 균형을 잡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균형감각. 머리를 땅에 닿아 온 몸을 뒤집어 세워도 견딜 수 있는 균형감! 내가 감히 흉내 내지 못할 동작을 만들어가는 옆의 수련자들을 보며,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요가동작이 균형감각으로 완성되는 거라고, 요가 초심자는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요가를 하면서, 물구나무자세로 일컬어지는 살람바시르사아사나 자세를 ‘완성’해가면서 말이다. 균형이 버티는 힘과 나아가는 힘이 만드는 긴장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힘이 균형을 만든다는 말이다. 나는 그것을 몸으로 배웠다.
버티는 힘보다 나아가는 힘이 강하면 몸이 튕겨져 나가며 쿵 하고 바닥에 몸을 던지게 된다. 반대로 버티는 힘이 너무 강하다 보면 몸이 고꾸라진다. 힘과 힘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균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내 몸이 얼마나 물렁한 몸 인지를 다시 인정하게 되었다. 물구나무 서기를 여러 차례 시도하면서 두발을 하늘을 향해 바짝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내 어깨와 배의 힘이 두발이 하늘을 향할 때까지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동으로 아무리 두발을 차 올려보아도, 어깨와 뱃심 견뎌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몸이 떨어진다.
-
나아가는 힘과 버티는 힘을 어떻게 조화롭게 써서 균형을 맞추어가는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물구나무 서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몸이 주저앉아버리는 것도, 발끝에 힘을 너무 주어서 쥐가 날 것 같은 것도 사실은 힘을 써야 할 곳을 몰라 생기는 일임을 안다. 꼭 요가를 할 때만 힘이 잘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는 것도, 어깨에 말 끝에, 행동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은 힘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의 정치적 올바름을 확신하는 사람이 무섭고, 나이가 들어서도 피해자이기만 한 사람은 징그럽다. 본인이 틀릴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본인의 힘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이들은 균형 감각이 없다. 힘이 없어 한 가지만 선택하는 사람들, 힘이 없어 균형을 잃은 사람들이다. 세상이 서글픈 이유가,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하고 숙고하여 선택했지만 틀렸다는 것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 데 있지 않는가. 마냥 옳은 사람도 마냥 피해자이기만 한 이들도 견디기 힘들다.
-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소용이 없다.
힘 없이 균형도 없다.
요가를 하면서 만들어내는 몸의 균형을 위한 힘 말고,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균형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무엇을 하며 어떤 연습을 하면, 살람바시르사아나를 완성해가듯이, 나의 인생도 삶도 ‘완성’되어 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걸 무엇을 통해 확인하고 있고 확인할 수 있을까.
지난 요가 수업에서 나는 드디어, 물구나무 서기 자세의 가장 기본을 아무런 도움도 없이 벽에 기대지도 않고 완성했다. 손 깍지를 모서리 삼아 팔을 브이 모양으로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를 손깍지 가까이 놓는다. 무릎을 쭉 펴서 한발 한발 얼굴 가까이로 걸어오듯 가져오면 움틀움틀 두 다리가 띄울 준비를 한다. 머리를 바닥에 닿은 채, 무릎을 살짝 굽혀 균형을 잡아보고, 이제 다리를 쭉 뻗어 올리면 된다.
물구나무를 하고 스무 번 숨을 쉬고 나면, 두 다리만 천천히 내려 바닥과 평행하도록, 'ㄱ'자를 만드는 '하프' 자세를 한다. 또 숨을 열 번, 쉰다. 난생 처음, 지난 수업에서 내가 이 코스를 ‘완성’했다. 아무런 도움이 없이 말이다. 물구나무 서기를 해서 서른 번 호흡을 완성하며, 나는 스스로 내 인생 최대치의 힘을 확인했다며 뿌듯해 했다.
아마 나는 다음주 수업에서는 서른 번에서 한 번이나 두 번을 더해 물구나무를 하고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요가를 그만두지만 않는 다면 나는 어제보다 더 단단한 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신뢰가 생겼다. 이 간명하고 단순한 사실이 주는 위로가 있다. 요가처럼. 요가처럼 인생에서도 이렇게 조금씩 호흡을 늘려가며 힘을 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라도 어제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라도 있다면 문득 올라오는 불안의 감각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