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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닌 가이드북에 한 줄도 소개 되지 않은 도시.

by Gyul_00 2008. 7. 16.

유트렉 

 

내가 지닌 가이드북에는 이 도시에 대한 어떤 설명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엔 무슨 무슨 대성당이 있는 곳도 아니었고, 플랑드르파 화가들의 작품이 대거 걸려 있는 뮤지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문 쪼가리에서 발견한 예쁜 도시의 사진과 몇 줄의 기사, 그것이 유트렉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다였다.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이 도시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유럽의 전형적인 오래된 도시답게 도심의 한가운데 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삼각형 가운데 작은 창이 난 담 같은 것이 건물 꼭대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노란색 혹은 붉은 벽돌의 2, 3층짜리 빌딩들이 성당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길을 확장하고 있다. 지붕으로 난 몇몇 창문들은 열려 있었고 바람에 커튼이 펄럭였다. 때때로 오래된 듯한 상점들의 녹슨 청동 간판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구경거리였고, 상점 위의 이층집에서는 천천히 흘러가는 주말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들린다.

성당을 마주하고 작은 보트들이 다닐 수 있을 만큼, 위로 놓인 다리에 아이스크림 노점상이 벤치를 두고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폭을 가진 연두색 빛 운하 역시 그곳에 있었다.
이곳은 바다를 바로 옆에 둔 암스테르담의 운하처럼 거대하지 않아 훨씬 더 마음 편히 발 바로 옆에 운하를 둘 수 있는 곳이다. 헤이그처럼 운하가 도로를 곁에 두지 않아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나른한 고양이들이 찾아오고, 목걸이를 한 개들이 벤치 옆에서 졸고 있고, 몇몇 여행객들이 부산하게 사진을 찍고, 이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기대에 있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성당과 운하 사이로 자리 잡은 노천 카페들에서 들려오는 칼과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를 기분 좋게 들어 줄 수 있을 만큼,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운하에 보트를 띄운 사람들이 그저 자기들의 흥에 겨워 이쪽을 보며 흔드는 손짓에 웃으며 응대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이 도시에서 나는 꼭 보고 싶어 못 견딜 것 같은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촘촘히 새겨 보고 싶은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자리한 노천 카페에서 사람들은 아까부터 접시를 드럼 삼아 포크와 나이프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가롭고 햇볕 좋은 유럽의 모든 종류의 거리 음악은, 노천 카페의 이 수없이 많은 드럼 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모든 풍경이 한 번의 입김에 마구 터져 나오는 비눗방울 같다.

이유 있게 지도를 접고 길을 잃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다가 저만큼 보이는 성당의 꼭대기를 보며 무작정 걸어 다시 찾은, 연둣빛 운하를 낀 도심의 광장.
한가로운 여행객은 늦은 점심을 또, 1.5 유로짜리 터키 피자로 테이블 없는 외식을 하며, 바로 저기서 들려오는 거리의 이 드럼 소리에 흥얼거리고, 성당을 배경으로 아이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녹는 풍경’을 신중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때로는 어떤 여행길에는 미리 작성된 뮤지엄 리스트도 확인해야 할 리텐티켓도, 그따위 가이드북조차 없이도 충분할 수 있음을. 그 가이드북에 올려지지 못 한 수많은 작은 도시들과 골목골목 들이 바로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모든 여정, 원형으로 이어진 길. 길, 그 루트는 내가 찾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그것이 꼭 가이드북과 같지 않아도, 남들과 같지 않아도 된다고. 여행을 하다 길을 잃었다면 무언가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계획과 다르게 새로운 것을 본 것뿐이라고.

 

기차에 오르기 전 어떤 이의 “거기엔 왜?”라고 물었던 질문에, 그 사진 한 장이라고 답하는 것, 그게 왜 쑥스러웠는지, 그냥, 이라고 답했지만, 그를 어디선가 다시 만난다면 `그냥` 말할 수 없을 만큼 내게는 아름다웠다고, 더불어 여행은 결국 그런 거라고 말 할 수 있게 해준 지난 주말의 유트렉.
내가 지닌 가이드북에 한 줄도 소개되지 않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