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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매일

숲을 걷는 일

by Gyul_00 2018. 9. 25.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신을 만날 때, 신은 모세에게 신발을 벗을 것을 요구한다. 모세는 신을 벗음으로써, 그동안 자신을 규정했던 것들을 벗고 ‘다른 존재’가 되어 신을 만난다. 모세를 규정했던 수 많은 설명,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의미가 없다. 두발의 신을 벗는 의례를 통해 모세는 오롯이 신을 만난다.





숲을 걸으면 내가 그동안 어떤 신을 신고 있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우습고 볼썽사나운 질투에 사로잡힌 나. 그래서 끊임없이 아무도 알 수 없고 모두 말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내가 쓴 소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 열등감에 빠져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며 위악을 떨고 있는 나. 동시에 아주 짧은 문장 하나에, 단 한번의 재치 있는 단어로 스스로를 우쭐해 하는 나. 이 모든 것이 슬프게 느껴지고 우울함의 이유가 되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나는 여기에 없다. 신을 벗었든지, 신이 벗겨줬든지.

중요한 것은 어제 걸었던 숲에서 보지 못한 오늘의 숲을 보고, 어제의 볕과 다른 오늘의 햇볕에 감탄하고, 새로운 바람을 느끼고 지금까지 한번도 듣지 못한 소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걸었던 숲을 오후에 걸으며 또다시 나는 감탄한다. 숲을 걸으며 나는 또 다시, 나는 이 숲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내가 숲을 알지 못해 걸을 때마다 발견하는 새로움에 나는 숲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숲을 사랑한다. 마땅히 이 숲을 걷는 의례에 초대 되었음을 감사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