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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매일

리틀 포레스트

by Gyul_00 2018. 3. 4.

밥상머리에서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할머니는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오지 않으면 해주지 않겠다고, 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도 나는 계란이 먹고 싶어서 닭들이 구구구 거리는 닭장의 철조망 문을 열고, 벌벌떨며 한참을 주저하다 계란 하나를 겨우 꺼내 툇마루로 튀어 올랐다. 시골집 담장을 따라 심어둔 수박넝쿨을 보면, 어린 나는 때를 모르고 수박이 초록빛만 난다 싶으면 따서 할머니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는 네 머리통만한 건 먹지 못한다고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며칠 지나면, 나는 또 겨우 내 머리통만한 연두빛 영글지 않은 수박을 따서 부엌에 올려두었다. 깨 타작을 하고 깨 대를 태우는 날은 타닥타닥 소리에 신이나서 마당을 뛰어다녔다.

지금은 할머니 묘가 있는 곳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일은 연례행사였다. 삼촌들이 작대기로 까치밥은 남기고 감을 따서 나무궤짝에 담아 시골집 윗목에 올려두곤 했지만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는 나를 두고 할머니는 감 귀신 들린 것처럼 밤마다 윗목에 앉아 홍시를 빨고 있던 것이 어느 날 마당에 떨어진 떫은 감을 먹고 자지러지게 울더니 그날부터 술을 끊듯 감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지 않고도 계란 후라이쯤은 혼자서 마음껏 해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들깨가 잔뜩 들어간 음식은 신이나서 받는 사람이 되었다. 수박이 짙은 녹색이 되어야 맛이 난다는 것도 알고 가을이 되면 홍시를 사다가 냉동실에 쟁여두고 아껴먹는다.

오늘 극장에서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나오는 길에 울컥,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다. 임실 신평 시골집 같은 곳을 배경으로 계절이 바뀌는 내내,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계절이 생각났다. 따뜻한 기억도 서럽고 겁이나던 기억도 그 시골동네를 배경으로 있지만, 거기에서 많은 계절을 보낸 것은 축복이구나.

감나무 매화나무가 마당에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오랜 소망도, 생각해보니 시골집이었다.